
[당선소감]
선정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서른 전후 한 때, 뜬금없이 원고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형상화하는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뒤, 문득 그때 그 시도를 계속했으면, 지금 마음이 조금은 덜 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남겨놓지 않고 떠나는 인생은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들었을 때 그랬습니다.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운 삶을 살아, 가족과 주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지 않은 나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덕목은, ‘눈에 띄지 않고 살기’라는 소극적 대안이 유일할 수 있습니다. 몸을 불사르며 열정적으로 살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답이 아닐 수 있다는 직감이 왔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컴 앞에 다시 앉았습니다. 3년이 지났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이번 선은, 이제 겨우 사람들의 마음의 맨 끄트머리에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의 문 앞에 몇 밀리미터쯤 가까워졌음을 뜻할지도 모릅니다. 허공을 향한 독백이 아니라 누군가의 촌음을 감히 빼앗아 볼 용기를 가져볼 수 있다는 가능성의 메시지입니다.
인생 5막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드리워지는 커튼이 바닥에 닿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용히 달려보려는 시도는, 작은 것도 얻지 못하고 실패로 끝날 수 있겠지만 ‘삶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위로에 가슴이 조금 따뜻해집니다.
감사합니다.
[칼럼] 고독의 방에서 위로의 방으로
요양시설에 입소하는 노인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자식의 손에 이끌려 오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마음이 편치 않다. 마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강제로 끌려온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부모를 버리는 곳이라고”고. 하지만 그 장면을 오래 지켜보다 보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아흔이 넘은 한 노인이 혼자서 언덕을 올라왔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어 있었다. 입원을 원했다. 단정한 차림에 표정은 온화했고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그는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자신이 점점 불편한 존재가 되어 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스스로 요양병원 입원하여 아들 내외의 짐을 덜어주려고 했다.
보호자와 함께 오지 않으면 입원할 수 없다는 병원 당국자의 말은 그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언덕을 내려가는 그의 어깨는 축 처져 보였다. 짐이 되는 일을 끊어 내지 못한 설움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듯 했다. 며칠 뒤 그 노인은 아들 내외와 함께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그의 가족들이 강제로 끌려왔다.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었다. 그들은 목적은 노인의 입원을 거부하기 위한 것이었다.
“끝까지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노인은 끝내 돌아서야 했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던 그 모습이 내게 오래 남았다. 그 노인처럼 요양시설에 스스로 입소하겠다고 오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등을 떠밀려 온다. 등을 밀려올 때의 그들의 모습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의 그것과 닮아 보였다. 먹을 입을 줄일 목적으로 유기 장소로 노인이 끌려가는 옛날의 고려장이 현대에 재현되고 셈이다. 그래서 요양시설을 현대판 고려장터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요양시설에 들어온 뒤, 많은 노인들은, 밖에서 그런 것처럼 대부분 혼자 생활할 수 없을 만큼 쇠락해 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대개 마음만큼이나 몸이 망가져 있다. 식사, 이동은 물론 대개 배변 등의 생리적 시스템이 무너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 상태여서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울 때, 가족들은 부득불 그 책임을 요양시설에 떠넘기게 된다.
개중에는 단지 노인들 봉양이 자신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자신들의 연로한 부모를 시설에 맡기게 된다. 그들의 처신이 올바르다 할 수 없겠지만 흐름은 바뀌고 있다.
시대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요양시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이곳에서의 삶은 쓸쓸한 인생 마감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싫어한다. 이곳에서의 결말은 사랑하는 가족 옆에서 마지막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떠남은 언제나 슬픈 일이지만 조선시대에 화롯가에서 정담을 나누 듯 따뜻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작별을 고하고 싶다. 그런 작별은 나이든 사람뿐 아니라 장차 그 위치에 서게 될 우리 모두의 로망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해도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따뜻한 작별은 점점 희귀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매스컴에서 자주 보도되는 ‘고독사’는 여전히 남의 일처럼 간주되지만, 점차 희귀한 사례가 아니라는 인식이 우리 사이에 퍼져가고 있다. 설마 그게 우리 일이겠느냐고 마음 편히 생각하는 동안 외로운 죽음은 사회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로운 떠남은 내 일이 아니라고 외치는 동안, 어쩌면 우리는 고독사보다 더욱 슬픈 현실에 직면할 수 있다. 그건 내 주위를 지켜줄 사람의 진심에 회의를 가질 때이다. 우리는 주위에 우리의 작별을 슬퍼해 주며 떠남이 외롭지 않게 지켜줄 충분한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 동안, 문득 그들의 진심에 의심이 갈 수 있다. 그들의 진심어린 모습이 어쩌면 포장된, 닦아 놓은 웃음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다. 가정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세상에게 마음 편한 노후를 위해 어디로 가야 할까.
어떤 이들에게는 속 들여다보이는 인사치레보다는 차라리 요양시설의 작별이 좋은 것은 아닐까. 자신의 삶을 존중받고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그곳에서의 고별사는 화롯불 정담 정도는 아니어도 크게 과장되지 않을 것 같다. 시설에 있는 동안 낯선 이가 아니게 된 이들의 케어를 받으며, 처지가 엇비슷한 환우가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작별은, 진심을 의심하게 되는 관계보다 차라리 덜 외로울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