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이진희] 영화 <암살자들>, 영화적 상상력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

▲이진희/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영화 <암살자(들)>, 영화적 상상력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로 영화계가 시끄럽다. 논란은 정치권으로 번졌고 국정감사장까지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1974년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벌어진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과 육영수 여사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실화를 다룬다. 필자는 국민학교 시절, 그 엄청난 역사적 현장을 TV 생중계로 직접 목도했다. 그래서 이번 논란을 더욱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당시 수사당국은 북한과 조총련의 지령을 받은 재일교포 문세광의 범행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영화가 현장의 총성 횟수와 확인된 탄환 수의 차이 등의 의문점을 부각하며 문세광 외에 또 다른 공범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때문에 영화가 그 배후로 당시 권력, 나아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시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를 역사 왜곡으로 보는 비판과, 영화적 상상력에 기반한 창작의 자유라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일부 정치인은 영화가 사건의 배후를 북한이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인 것처럼 왜곡했다며 이는 사자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제목을 복수형인 '암살자(들)'로 지어 문세광 외 다른 암살 주체를 암시했다는 이유로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사례도 있다. 반면 제작진은 개봉 전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사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팩션(Faction)'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입장문을 통해서도 영화가 특정 인물을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고,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영화를 직접 본 일부 정치인 역시 영화가 박 전 대통령의 관여 가능성까지 그리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제작진의 사과와 상영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출연 배우와 그가 광고하는 회사까지 불똥이 튀었다. 영화제 관련 행사가 잇따라 취소되었고, 자택 앞 집회와 협박성 글에 시달린 한 주연 배우는 한때 경찰의 신변보호까지 받아야 했다. 영화를 비판하는 쪽은 고인과 유족의 명예, 그리고 이미 확정된 수사 결론의 무게를 강조한다. 옹호하는 쪽은 창작의 자유와 공적 사안에 대한 해석의 폭을 강조한다.


물론 창작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고, 영화에서 상상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일단 상영된 작품의 해석은 관객의 몫이므로, 제작 의도만으로 작품을 방어하기는 어렵다. 영화가 제기한 의문점들은 오래전부터 거론되어 온 것이지만, 그것이 곧 다른 배후의 존재를 입증하지는 않는다. 당시 수사에서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검증되지 않은 가설로 채우면, 관객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영화가 12세 이상 관람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열린 결말'이나 '의혹 제기'라는 제작진의 입장이 이 모든 책임을 면제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영화 해석에 동의하지 않을 자유가 있고, 공개적으로 반박할 수도 있다. 법적 요건을 갖춘다면 형사처벌을 요구할 수도 있고, 형사 책임을 면하더라도 민사 책임은 별개일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성역은 없다. 감독도, 제작진도, 배우도, 평론가도, 관객도 모두 작품을 합리적으로 비판할 수 있고, 그 비판에 대한 비판 역시 가능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물리적 폭력과 위협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영화적 상상력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 필자는 그 책임이 일차적으로 창작자에게 있다고 본다. 다만 그 책임을 묻는 방식은 배우의 집 앞 시위나 협박이 아니어야 한다. 국회가 창작자를 불러 세우는 방식이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관객과 평단, 역사학계와 언론이 함께 만드는 공론장에서의 엄정한 평가여야 한다. 사실을 근거로 의혹을 반박하고, 작품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 평가를 창작자가 감당하는 것이 상상력에 따르는 책임이다.


이번 논란이 사그라들더라도 역사와 권력을 다루는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방어벽도, '누구 편의 영화인가'라는 진영 논리도 아니다. 사실과 의혹을, 비판과 위협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가 진짜 질문이 되어야 한다. 유족이 생존해 있는 지금, 이 질문은 더욱 무겁다.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왜 물고 늘어지느냐"는 반응은 이런 질문 자체를 회피하게 만든다. 건강한 공론은 그 회피를 넘어설 때 비로소 시작된다.




▲영화 <암살자(들)> (필자 이진희 제공) ⓒ한국공공정책신문


 이진희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교육학박사)

(현) 진해세화여자고등학교 교장

(전) 서울대학교 강사

(전) EBS 수능윤리 강사



 

작성 2026.10.20 01:01 수정 2026.10.20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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